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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봄, 여름호-생로병사의 비밀] 지키다-생명 탄생의 신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08-03 조회수 : 438
생명 탄생의 신비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생활의 영역에까지 등장한 21세기 최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인들에게 인간 생명의 탄생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환경에서 새 생명을 낳다 생명을 잃은 여성들이 많았음에도 다산(多産)이 곧 다복(多福)을 상징했던 문화 속에서 살았다. 그들은 인간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했고, 임신한 여성과 태아를 건강하게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글 김지영(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2012년 5월 KBS 1TV에서 방영된 <3D 의학다큐멘터리 ‘태아(Fetus)’>는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세계 최초로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하여 3D 입체 영상으로 제작하여 화제가 되었다. 당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던 가장 놀라운 장면은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남성이 한번 사정을 하면 보통 3억 개의 정자가 배출된다. 그 가운데 가장 빠르고 건강한 오직 한 마리의 정자만이 3억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난자를 만남으로써 이 땅에 비로소 한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은 과거와 달리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정자와 난자의 만남을 현대 과학의 시선으로 ‘보며’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이 잉태되어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여전히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비’의 영역이 존재한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1)정자가 난자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순간, KBS 1TV 3D 의학다큐멘터리 ‘태아’ 캡쳐
정자가 난자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순간, KBS 1TV <3D 의학다큐멘터리 ‘태아’> 캡쳐.

KBS 다큐 ‘태아’는 눈에 보이지 않던 생명 탄생의 신비를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애니메이션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인간 세상에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정자가 난자를 찾아 나서는 몸속 신비로운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나와 내 가족, 나의 동료,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익명의 사람들을 소중한 생명체로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한 인간을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사랑과 존중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힘을 얻게 된다. 2022년 한국 사회는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 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갱신했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귀해지고, 인구감소로 인한 국가의 존망을 운운하는 위기의식 또한 고조되고 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출산율은 오르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는 혼인하지 않는 청년세대,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 세대와 달리 모두가 혼인하고, 자녀 또한 많이 낳았던 사회 분위기 속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새 생명을 낳다 생명을 잃은 여성들이 많았음에도 다산(多産)이 곧 다복(多福)이었던 시대를 살았던 조선사람들은 인간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아이를 갖기 위해 남자와 여자는 어떤 몸가짐을 하였으며, 임신한 여성과 태아를 건강하게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임신과 출산에 관한 지식을 담은 전문 의학서적, 산서(産書)

조선 시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지식은 1434년(세종 16년) 3월 5일 세종의 명으로 당시 왕실 의료를 담당한 내의원(內醫院)에 소속되어 세종을 진료했던 어의(御醫) 노중례(盧重禮)가 편찬한 『태산요록(胎産要錄)』을 통해 처음으로 정리되었다. 닥나무 종이에 목판으로 인쇄한 이 책은 그 가치가 인정되어 1993년 11월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위치한 한국의료생활사 전문 박물관인 가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2)『태산요록』 목차 일부, 가천박물관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2)『태산요록』 목차 일부, 가천박물관

『태산요록』의 상권은 ‘포태교양지법(胞胎敎養之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고, 하권은 ‘영아장호지술(.兒將護之術)’에 관한 것이었다. 포태교양지법이란 임신한 부인의 자궁 속에서 열 달 동안 자라나는 태아를 가르치고, 기르는 방법이다. 태교론을 시작으로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법, 임신 중 피해야 할 음식, 태살(胎殺)을 피하는 법, 출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하는 약물 등 총 20항목에 이른다. 영아장호지술이란 갓 태어난 젖먹이 아기를 각종 병으로부터 보호하여 건강하게 길러내는 방법이다. 출산 후 신생아를 씻기는 방법, 탯줄을 자르는 방법, 태반과 탯줄로 구성된 태의(胎衣)를 갈무리하는 방법, 유모를 선택하는 방법 등 총 27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송나라 때 진자명이 지은 『부인대전양방(婦人大全良方)』, 『태산구급방(胎産救急方)』, 『왕악산서(王岳産書)』 등 산부인과 전문 의서와 『전씨소아방(錢氏小兒方)』과 같은 소아과 전문 의서를 참고하였다. 주로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의서들이다. 이를 통해 조선 초기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의학지식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의학서에 기초하여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3)『언해태산집요』 ‘구사(求嗣)’, 국립중앙도서관
(우)『언해태산집요』 ‘구사(求嗣)’, 국립중앙도서관. (좌)『언해태산집요』 ‘구사(求嗣)’, 국립중앙도서관.

그 후 1608년(선조 41년) 어의 허준(許浚)이 선조의 명을 받아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를 편찬하였다. 한글로 풀어 쓴 언해본으로 발간된 점이 주목된다. 주로 부인의 임신과 출산, 갓난아기의 다양한 증세와 약물 처방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식을 구하여 낳을 방법인 구사(求嗣) 부분을 살펴보자. 명나라 때 편찬된 『의학입문(醫學入門)』을 가장 먼저 인용하며, 남자의 정기가 차고 부인의 혈기가 약하여서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남자의 정기가 찬 것은 맥(脈)이 미약하고 막혔기 때문이므로 이를 고치기 위해 남자에게 고본건양단(固本健陽丹)과 오자연종환(五子衍宗丸)을 처방하였다. 오자연종환의 처방문에는 구기자(枸杞子), 토사자(兎絲子), 복분자(覆盆子), 차전자(車前子), 오미자(五味子) 등 다섯 종류의 열매로 어떻게 만드는지, 빈 속에 아흔아홉 환을 삼키고, 자기 전에 쉰 환을 소금물과 함께 복용 하도록 하는 등 제조법과 복용법 또한 상세하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4)오자연종환을 만들 때 들어가는 다섯 종류의 열매 구기자, 토사자, 복분자, 차전자, 오미자(출처 Shutterstock)
오자연종환을 만들 때 들어가는 다섯 종류의 열매 : 구기자, 토사자, 복분자, 차전자, 오미자.(출처 : Shutterstock)

여자는 월경이 조화롭지 못하면 임신을 못하므로 온경탕(溫經湯), 조경종옥탕(調經種玉湯), 여금단(女金丹)과 백자건중환(百子建中丸)을 처방하였다. 조경종옥탕은 생리불순으로 임신이 되지 않을 때 부인이 월경이 있는 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먹는데 약을 다 먹고 월경이 그쳤을 때 함께 자면 반드시 아이를 잉태하는 특효약이었다. 여성의 임신·출산·초기 양육에 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산서(産書)에는 수태(受胎)와 잉태(孕胎)라는 표현이 나온다. 수태는 ‘태를 받다’이고, 잉태는 ‘태를 품다’로 해석된다. 산서에는 생명을 주는 대상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떤 존재로부터 인간 생명의 근원인 태를 전해 받아서 엄마의 자궁에서 품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태동(胎動)이나 안태(安胎)와 같은 태의 변화에 관한 의학적 증상에 주목하고 있다. 태가 놀라서 편안하지 못한 상태인 태동은 위험하므로 의학적 처방을 통해 안태, 즉 태를 편안히 관리하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태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면 타태(墮胎), 즉 받아서 품었던 태가 떨어져 나가는 불행한 일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아는 엄마의 자궁 안에서 편안하면 살고, 편안하지 못하면 죽는다. 즉 엄마의 자궁 속에서 성장하는 태아가 편안하지 못하면 결국 인간 생명체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된다. 조선사람들은 한 생명의 탄생이 곧 태를 편안하게 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5)임신 4개월째 태아의 모습, KBS 1TV 3D 의학다큐멘터리 ‘태아’ 캡쳐
임신 4개월째 태아의 모습, KBS 1TV <3D 의학다큐멘터리 ‘태아’> 캡쳐.
임신 3개월부터 시작하는 태교(胎敎)

한국뇌과학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전문잡지인 『브레인』 2020년 2월호에 뱃속의 아기와 함께하는 임신 주기별 태교 명상이 실렸다. 첫 번째 달에는 태교 호흡 명상으로 아기집을 건강하게 만들고, 두 번째 달에는 아기의 뇌가 급속히 발달하니 하늘의 에너지를 받아 아기의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세 번째 달에는 태아가 엄마의 양수를 먹으며 미각이 발달하므로 태교 음식 명상을 하고, 네 번째 달에는 기억 장치인 해마가 발달해서 엄마의 감정을 바로 느낄 수 있으므로 엄마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태교 숲 명상을 한다. 그리고 웃음 명상, 소리 명상, 색을 통한 차크라 명상, 춤 명상, 뇌 회로 명상, 이미지 명상 등 월별로 다양한 태교 뇌 명상법을 만들어 소개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사회 변화에 맞춰 실천했던 구체적인 태교 방법은 달랐다. 그러나 전통 시대부터 중시했던 태교를 통해 한국인들이 자궁 속 태아를 특별하게 여겼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태교는 언제부터 시작하며, 어떻게 했을까? 임신한 지 1개월에는 배(胚)라 하고, 2개월에는 고(膏)라 하며, 3개월이 되었을 때 비로소 ‘태(胎)’라 하였다. 즉 임신 3개월이 되어야 태아(胎兒)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인간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코와 생식기가 먼저 뚜렷이 구별되는 임신 3개월부터 태교를 시작하였다. 태교는 임신한 여성이 자궁 속 태아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겨 임신 3개월부터 출산할 때까지 행하는 태중 교육을 일컫는다. 태교는 태어날 때부터 한 살을 세는 한국인 특유의 나이 계산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태교는 기나긴 임신기간 동안 태교의 실천 주체인 임신부가 태를 편안하게 하는 지혜로운 방식이기도 하다. 중국 한나라 때 인물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에 주나라를 세운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妊)의 태교가 나온다. ‘태임이 문왕을 임신하였을 때 눈으로는 나쁜 것을 보지 않았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았고, 입으로는 오만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처럼 태임은 태교를 잘하였다.’ 태임의 태교는 임신한 여성이 사물을 지각하는 신체 기관인 눈(시각)과 귀(청각), 그리고 내면을 표현하는 입(언어)를 조심하는 것이었다. 1475년(성종 6년)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가 처음으로 『내훈(內訓)』이라는 여훈서를 펴냈다. 이 책은 왕실 여성뿐만 아니라 양반 여성들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내훈』 「모의장(母儀章)」에 나오는 태교에 『열녀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열녀전』에 기록된 태임의 태교는 유향의 태교론과 함께 조선 사회에서 통용되던 태교의 연원이었다. 19세기에는 세계 최초로 여성이 직접 쓴 태교 전문서인 『태교신기(胎敎新記)』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62세의 사주당 이씨가 자신이 직접 네 자녀를 기르며 얻은 경험과 의학지식들을 종합하여 저술한 것이다. 조선 시대 태교는 임신한 여성의 행동과 마음을 ‘삼가는[謹]’ 행위와 관련된 다양한 금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임신 중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약물 등 임신한 여성의 몸 상태를 고려한 다양한 의학적 금기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임신한 여성이 지켜야 할 금기들은 의복, 음식, 의학적 처방, 수면, 노동, 장소(방향), 성생활, 자세 등 구체적인 일상생활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다. 음식은 태아의 건강뿐만 아니라 난산과 유산의 위험, 아이의 신체상의 결함 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실제로 임신 중에 먹지 못하게 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임신한 여성에게 해로운 것이었고, 약물도 독성을 함유하고 있거나 약물의 성질이 뜨겁거나 차가운 것이었다. 음식 금기와 함께 중요하게 고려된 사항은 태살(胎殺)이 있는 방위를 피하는 것이었다. 태살은 월과 일에 따라 태아에게 해를 끼치는 기운이 일정한 장소에 깃들어 있어서 태아의 신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줬다. 따라서 태교할 때 특히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이기도 하다.

왕실의 산후음식과 산후 보양식 재료

출산 후의 상황은 출산 전보다 더 위험하다. 육체적으로 연약한 상태에 있는 산모가 식사를 잘하고 있는지, 신생아가 젖을 잘 빨고, 대소변을 잘 보는지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17세기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출산 과정을 기록한 『호산청일기(護産廳日記)』와 19세기 명성왕후가 순종을 낳고 삼칠일(三七日) 동안 먹었던 음식의 식재료를 적은 왕실 고문서 「갑술이월삼칠일갱반소용발기」가 남아 있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6)『호산청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호산청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7)「갑술이월삼칠일갱반소용발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갑술이월삼칠일갱반소용발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후궁의 출산을 돕기위해 조직된 임시 관청인 호산청에서 작성한 일기와 궁녀들이 작성한 왕실 고문서를 통해 출산 후 왕실의 산모들이 몸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산후음식을 먹었는지 살펴보자. 영조를 낳은 최씨는 출산 후 화반곽탕(和飯藿湯)을 수시로 먹었다. 화반곽탕은 대표적인 산후음식으로 흰 밥을 넣은 뜨거운 미역국이다. 그 외에 밥과 꿩고기 익힌 것, 홍합탕 등도 산후음식으로 제공되었다. 산후에 변비 증상으로 고생한 최씨는 삼인죽(三仁粥)을 먹기도 했다. 삼인죽은 복숭아 씨앗, 해송자 씨앗, 오얏 씨앗을 넣어 만든 죽으로 산후 변비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숙빈 최씨는 출산 전에도 자주 뜨거운 미역국에 흰 밥을 말아서 먹었다. 당시 사람들은 화반곽탕이 출산에 임박한 부인의 원기를 돕는다고 생각했다. 해산 후에는 오히려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도록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먹는 양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이때 날 음식, 찬 음식, 단단한 음식은 절대 먹지 못하도록 하였다. 출산으로 기력을 소진한 산모의 회복을 돕기 위해 산후 보양식도 제공되었다. 내의원에서 특별히 ‘강고도리’ 30개를 종이 주머니에 넣어 출산 즉시 명성왕후에게 진상하였다. 강고도리는 일본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가쓰오부시’이다. 가루가 나도록 얇게 썰어 미역과 같이 국을 끓이면 산부의 기혈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었다. 대마도주가 예조에 예물로 보내는 물품에 들어가는 귀한 수입품이었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8)훈연 건조하여 딱딱해진 가다랑어를 얇게 썰어 가쓰오부시를 만든다(출처 Shutterstock)
훈연 건조하여 딱딱해진 가다랑어를 얇게 썰어 가쓰오부시를 만든다.(출처 : Shutterstock)

왕실의 산모에게는 일본산 ‘가쓰오부시’로 국물을 진하게 우려내어 끓인 미역국에 새우나 홍합을 넣은 산후 보양식이 삼칠일 동안 제공되었다. 왕실에 전래된 산후보양식 재료인 강고도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대부가에 전해져 산부의 기혈을 보충하기 위해 먹었던 귀한 산후 보양식 재료로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대 이후 산후조리 할 때 먹는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은 조선의 산모들은 먹지 않았던 것이다.

왕실의 장태의례(藏胎儀禮)와 태실(胎室)의 조성

한국인들이 출산 후 배출되는 태반과 탯줄인 ‘태’를 처리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다. 병원 출산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는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인들은 태를 불에 태우거나, 물에 띄워 보내거나, 땅에 묻었다. 그 가운데 태를 불에 태우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전라남도 나주지역에서는 출산 후 3일이 지나면 태를 ‘소태방(燒胎方)’에 태웠다. 예를 들면, 1월과 9월에 태어난 아이의 태는 진방(辰方)에서 태우면 부귀하고, 2월과 6월, 10월에 태어난 아이의 태는 유방(酉方)에서 태우면 크게 길하다고 한다. 태를 태울 곳의 방향을 정하여 태우면 태어난 아기가 앞으로 부귀하고, 글을 잘하고, 급제한다고 생각했다. 태가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 방식이 반영된 문화적 행위이다. 태를 주로 태우는 민간의 풍습과 달리 왕실에서는 정교한 의례를 거쳐 태를 묻었다. 이를 태를 묻는 의례라는 뜻으로 장태의례라고 한다. 왕실의 장태의례는 왕실 자녀의 ‘태’를 신성한 의례대상물로 삼아 치러진다.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10개월 동안 건강하게 자라 날 수 있도록 도왔던 ‘태’가 의례의 대상물이 된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9)경상북도 예천군에 조성된 장조와 문종의 태실을 그린 산수도 부분, 장조 태봉도, 한국학중앙연구원(출처 문화재청)
경상북도 예천군에 조성된 장조와 문종의 태실을 그린 산수도 부분, 장조 태봉도, 한국학중앙연구원.(출처 : 문화재청)

왕의 피가 흐르는 공주와 왕자의 신성한 태를 묻는 장태의례는 태가 궁궐 안에서 성장하는 왕 자녀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에서 창출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태로 인하여 자란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태의 주인이 현명하고 어리석게 되는 것, 그리고 성하고 쇠퇴함이 모두 태에 달려있기 때문에 태를 신중히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태를 묻는 장소의 길흉에 따라 태 주인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풍수설의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태 관념과 풍수 원리에 의해 왕실에서는 궁궐밖에 태를 묻기 좋은 땅인 태봉(胎峯)을 선정한 후 태실(胎室)을 조성하여 태를 묻었다. 따라서 왕실의 태실은 길지(吉地)를 찾다 보니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되었다.

(2023봄여름호_2.지키다1_사진10)숙종의 태지석과 백자 태항아리,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숙종의 태지석과 백자 태항아리(출처 :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에서는 출산 후 3일째 되는 날 산모와 신생아의 몸을 씻는 세욕(洗浴)과 함께 태 또한 정결하게 씻어내는 세태(洗胎) 의식을 행한다. 출산으로 오염된 몸과 태를 정화하기 위한 것이다. 3일 동안 ‘이도 저도 아닌’ 전이 단계에 있던 태는 정화의식을 거친 후 태신(胎神)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존재로 변화된다. 장태의례는 세태 후 궁궐 안 산실에 보관한 태항아리를 모시고 궁궐 밖 태를 안치할 태봉이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이동해야 하므로 의례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장태의례의 결과물로 태를 넣은 태항아리를 안치한 석실(石室)인 태실(胎室)이 조성된다. 조선 시대 왕실 가족이 생애과정 가운데 경험하는 일생의례인 책봉례, 관례, 가례, 상례와 같이 장태의례도를 마친 후에 등록과 의궤가 제작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원자와 원손의 장태의례를 기록한 『원자아기씨장태등록』, 『원자아기씨안태의궤』, 『원손아기씨안태등록』 등 6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