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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봄, 여름호-생로병사의 비밀] 싸우다-의서에 담긴 옛사람의 지혜- 조선조 3대 의학유서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08-04 조회수 : 1258
의서에 담긴 옛사람의 지혜
- 조선조 3대 의학유서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
인간은 처해진 환경에 적응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기술과 문화를 만들어왔다. 의학 역시 질병을 극복하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 속에서 발전해 왔다. 병마와 싸운 경험들을 나누고 지식을 널리 활용하기 위해 의학 서적을 편찬하여 배포하였고, 남겨진 기록은 후대에 경험을 더하며 학문적 발전을 지속해왔다.
글 안상우(한국한의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신토불이, 자주의학 토대 세운 세종임금

향약(鄕藥)이란 조선 시대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약재를 의미하던 당약(唐藥)이란 말의 상대적 개념용어로서 우리 민족의 생활 터전에서 손쉽게 채집할 수 있는 자국산 약재를 뜻한다. 좀 더 범주를 확장하자면 오랜 기간에 걸쳐 한민족이 애용해 왔기에 익숙한 치료 경험이 녹아있는 의학 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현존하는 고대 의학 문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고려 시대 이전 향약에 대한 기록은 중국에서 펴낸 본초(本草) 곧 고대 약물학 서적을 통해 그 단편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고대 약물학의 시초라 여기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을 비롯하여 1082년에 펴낸 『경사증류비급본초(經史證類備急本草)』, 1116년에 나온 『본초연의(本草衍義)』, 그리고 1189년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重修政和經史證類備用本草卷)』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국의 관찬 약전(藥典)의 산지나 실지 임상경험을 기재한내용 가운데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고)조선[(古)朝鮮],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고려(高麗)’ 등의 명칭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기록을 통해 당시 중국에서 인정받은 한국 특산약재의 우수한 품질과 향약을 이용한 임상경험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종류로는 예컨대, 우리가 익히 아는 인삼을 비롯해 금설(金屑), 세신(細辛), 오미자(五味子), 위령선(威靈仙), 해송자(海松子), 무궁(蕪芎), 은설(銀屑), 백부자(白附子), 오공(蜈蚣) 등 40여 종에 달한다. 특히 곤포(昆布), 올눌제(..臍), 담채(淡菜), 모려(牡蠣), 문합(文蛤), 석어수(石首魚), 오적어골(烏賊魚骨), 해대(海帶), 해조(海藻), 해합(海蛤) 등 어패류와 해산물이 많이 기재되어 있어 오래 전부터 해양 식생을 발굴해 폭넓게 이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토사자(.絲子)와 곤포는 동해(東海) 혹은 발해(渤海)의 특산물로 기재되어 있다

옛날 중국 상주 땅에 중병을 앓아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낫지 않아 명의를 찾던 중, 우연히 신라에서 온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신라승이 말하길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가 있지만, 이 근방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선 산속으로 들어간 지 한참 뒤에 약초 하나를 캐왔다. 이 약초는 바로 위령선으로 이것을 며칠 복용하고 나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비용본초』에 ‘위령선전(威靈仙傳)’이란 제목으로 실린 것으로 신라 사람들이 주거지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를 단방으로 사용하여 중병을 치료해온 사실을 입증해 주는 기록이다. 또 하나 향약의학의 자주적 전통을 입증해 주는 사례가 실려 있다.

근래 의사들은 누에가 알을 낳은 종이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동방의 모든 의사들은 누에가 고치에서 막 껍질을 벗고 나오려고 하는 때 마지막 잠을 자고 있는 것을 쓴다. 두 가지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서 동인(東人)의 용법이 올바른 것이다.

이 문장은 『비용본초』 잠퇴(蠶退) 조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것은 송대에 추가된 내용이므로 여기서 ‘동방(東方), 동인(東人)’은 ‘고려(高麗), 고려인(高麗人)’을 가리키는 것이다. 고려인들이 잠퇴를 활용하는 방법에 더 능숙하고 밝았다는 것은 양잠을 광범위하게 실시했다는 것이고, 양잠 과정을 통해 얻은 용약 경험이 풍부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 역시 우리 민족이 향약의학을 통해 중국의학과는 결이 다른 자주적 의약경험을 축적해 왔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렇게 상고시대 이래 오랜 기간에 걸쳐 독자적인 의약 경험지식으로 축적되어온 향약은 고려 시대 말기에 이르러 『향약고방(鄕藥古方)』, 『향약혜민경험방(鄕藥惠民經驗方)』,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등을 편찬하면서 의학적 체계를 정비하였다. 조선 초에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서문에는 고려의 『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을 거쳐 『향약제생집성방』을 만들었고, 다시 이를 증보하여 『향약집성방』을 만들었다고 밝혀, 여말선초로 이어지는 향약의학의 계통을 분명하게 밝혔다.

『향약집성방』 조선전기 간본, 산청한의학박물관.
『향약집성방』 조선전기 간본, 산청한의학박물관.

이뿐 아니라 1633년 『향약집성방』을 중간할 때, 최명길(崔鳴吉)이 쓴 발문에도 새로운 의학서적과 약재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면서 신방(新方, 중국처방)을 많이 사용하여 향방(鄕方, 향약처방)이 폐절되었다고 한탄하였다. 이것은 중국의서와 약재가 전래되기 전에 이미 이 땅에서 나는 약으로 치료해온 전통이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실물로 남아있는 향약의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판각하여 인출하던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초간한 것이다. 간행시기는 대략 1232~1251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주로 궁벽한 시골, 의사가 없는 곳에서도 간단하게 대증치료할 수 있는 구급처치 방법을 모아놓았다. 또한 책의 말미에 부록된 『방중향약목초부(方中鄕藥目草部)』에는 향약 180종에 대한 속명(俗名), 약미(藥味), 약독(藥毒) 및 채취방법 등이 적혀 있어 고려 시대 향약의약의 면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근 연구에 따르면, 『향약구급방』에는 고려 의서로 밝혀진 『비예백요방(備預百要方)』을 광범위하게 인용하고 있어서 고려 시대 의학의 향약전통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전승된 향약 경험을 대대적으로 집대성하는 한편 향약의 채취·재배·감별·수치·효능에 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태조 6년(1397)에 『향약제생집성방』 30권이 만들어졌고, 세종15년(1433)에는 향약방문들을 대규모로 집성한 『향약집성방』이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향약집성방』은 고려 시대 향약경험을 계승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있다. 즉 누구나 쉽게 읽고 향약을 활용할 수 있도록 처방의 실용성을 추구한 것은 동일하지만 송대 『태평성혜방』이나 『비용본초』의 형식에 따라 방대한 약물지식을 체 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종합의서로서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향약구급방』(3권), 『향약제생집성방』(30권), 『향약집성방』(85권), 분량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약물 지식을 광범위하게 집적했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향약집성방』에 집대성된 향약을 이용한 자주적인 의학체계를 향약의학(鄕藥醫學)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조선 시대 향약의학의 특징은 향약의 재배, 유통, 관리 등 산업적인 측면과 경제유통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우선 토산약재와 중국약재를 비교 감별하였고 자생하지 않는 약재들을 들여와 이식해 토착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자국산 약물의 분포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적절한 채취방법과 채취시기, 가공법(修治法)을 보급하는데 주력하였다. 또한 관에서 약초재배단지(藥田, 약전)를 운영하여 향약 재배를 권장하고 생산을 증대시켜 수입약재를 대체하고자 하였다. 『향약집성방』이나 『세종실록지리지』를 통해 약재 생산과 재배가 국가산업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또 향약이 국가의료체제뿐만 아니라 국부창출에 있어서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500년 이어온『의방유취』 지식보고

『의방유취(醫方類聚)』는 조선 시대 의학을 대표하는 의서이자,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대의 한의방서이다. 세종의 왕명으로 집현전 학사들과 내의원 의관들이 3년에 걸쳐 합심 노력한 공동작업 끝에 세종 27년(1445) 무려 365권으로 완성되었다. 그 후 세조대 양성지의 주관 아래 여러 차례 교정을 거쳐 성종 8년(1477)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266권 264책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당송시기로부터 명초까지 역대 중국의 대표의서와 고려~조선 초까지 한국 고유의 의학 성과를 담고 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의학을 집대성한 의학백과전서로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전서는 총론과 각 병증항목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총 91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시 각 병증문은 이론·방약(方藥)·식치(食治)·금기(禁忌)·침구(鍼灸)·도인(導引)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각각의 질병증상에 대한 원인설과 병리기제, 증후, 맥상 등과 치료법과 처방약물은 기본이고 음식으로 병을 예방하고 조리하는 방법인 식치법, 생활상의 주의사항과 복약, 배합 금기 지식을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또 침치료와 뜸법을 전문적으로 논의한 침구법, 그리고 도인, 안교 등 평소 활용할 수 있는 건강체조와 양생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질병 발생 이전에 자연치유(治未病, 치미병, 예방의학)를 통해 건강을 유도할 수 있도록 권장함으로써 오늘날 생활체육과 자가면역 증진을 통한 예방의학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선구적인 사회의학을 추구하였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고금에 유례가 없었던 이 의학백과전서는 초간 당시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으로 인하여 30질 정도 밖에 인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중간된 적도 없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다. 조선 시대 이 책이 마지막으로 쓰인 것은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할 때로 25권 안에 158조 가량의 『의방유취』 조문이 다량 인용되었다. 이후로 조선의서에서는 『동의보감』을 통한 재인용만 확인되어 이 책의 원본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의방유취』 권201의 권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의방유취』 권201의 권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임진왜란 중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약탈하여 전리품으로 일본에 가져간 이후 조선에 남아있던 초간본은 거의 소실되었으며,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단 1권뿐이다. 일본에서 『의방유취』는 막부의관인 다키 모토후미(多紀元簡)의 의학관(江戶醫學館)에서 의학연구에 쓰였으며, 현재는 일본 왕실도서관(궁내청 서릉부, 宮內廳 書陵部)에 보관되어 있다. 1861년 의학관의 의사 기타무라 나오히로(喜多村直寬)가 조선의 의방유취 초간본을 대본으로 삼아 목활자로 복간하였다.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당시 일본은 조선 정부에 일본에서 다시 찍은 『의방유취』 목활자본 2부를 예물로 보냈다. 그중 1부는 한국전쟁 도중 산일되었으며, 나머지 1부는 고종이 어의 홍철보(洪哲普)에게 하사하였는데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5년 동양의과대학에서 필경사 200여 명을 동원하여 필사해서 전 11책으로 영인 출판하였다. 같은 책을 1981년 대만에서도 영인, 간행함으로써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두루 보급되었으며, 1982년 북경 인민위생출판사에서는 표점을 붙여 현대중국 활자본을 출판하였다. 한편 1990년대 이후 국내 출판사에서는 북한의 동의학연구소에서 번역한 국역본 『의방류취』(20권)와 원문을 합해 전질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한·중·일을 비롯 동아시아 각국에서 조선의『의방유취』가 번갈아 발행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 책에 담겨진 정보량이 엄청나게 방대하기 때문이다. 대략 1,000만 자를 상회하는 치료지식과 6만 종에 달하는 처방이 실려 있어 고전의학 지식데이터베이스를 이루고 있다. 세종대 500년 조선왕조의 국가경영의 틀을 다지고 의학기술발전을 위해 집현전 학자들과 문관, 의관들을 총동원하여 집적해 낸 동아시아 의학대백과전서, 건강한 미래사회를 위한 투자는 아직도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인류 보건향상과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역병과 전쟁을 극복한 세계유산의 지혜, 동의보감

2009년 7월 31일 『동의보감』이 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의궤, 직지심체요절, 고려대장경에 이어 동의보감이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인데, 전문의학 백과전서로서는 최초로 등재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은 일이었다. 400년 전 이 땅에서 만들어진 고전의학서가 어떤 이유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일까? 세계기록유산에는 과거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하여,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보존해야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된 것이다.

『동의보감』 편찬 과정

『동의보감』에는 18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고대 문헌들이 인용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의학서들이지만 경전과 역사서, 도가서까지도 망라하였다. 특히 『동의보감』에는 인용서의 원래 뜻(原意)을 해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인용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것은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선현의 말씀을 기술은 하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준용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저술 편찬에 있어서 보편적인 기준으로 준용되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는 이러한 편찬기준을 따르면서도 글 가운데서 새로운 개념을 자연스레 습득(拾得)할 수 있도록 고안하여 중국의학과는 체계가 다른 새로운 의학의 전범(典範)을 구축하였다. 『동의보감』은 전쟁 중이던 1596년 선조의 왕명에 따라 허준을 비롯해 유의 정작, 태의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 의관들이 편찬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정유재란이 터지면서 편찬인원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선조는 다시 허준에게 단독으로 편찬을 지시하고 궁중에 비장되어 있던 500여 부 의서들을 참고할 수 있도록 특명을 내렸다. 하지만 1608년 선조가 승하하면서 당시 수의(首醫)로 있던 허준이 책임을 지고 유배형을 받게 되어 집필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허준은 귀양지에서도 집필에 몰두하여 1610년 마침내 25책에 달하는 방대한 의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집필이 완료된 이후로도, 7년간 전쟁으로 인해 물자가 궁핍하여 인쇄하는데 꼬박 3년여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161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간행될 수 있었다.

『동의보감』(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본), 국립중앙도서관.
『동의보감』(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본), 국립중앙도서관.

『동의보감』의 구성

『동의보감』은 자연환경과 인간, 인체 생리와 질병,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하나의 짜임새 있는 체계로 엮어내어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춘추전국시대로부터 명나라까지 존재하였던 역대 의학에서 도출된 서(書)로 판이하게 다른 의학이론들과 처방들을 씨줄과 날줄로 교직하여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질병의 증상에 따라 변증하여 치료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개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전혀 새로운 의학체계로서 그 이전 시대에서 볼 수 없었던 구조적 틀이었다. 예컨대, 어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갖가지 의학이론들을 질병명 뒤에 나열하여 치료를 위한 각종 학설들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였다. 또 질병을 감별해낼 수 있는 진맥법을 바로 다음으로 기록하였고 그 뒤에 각종 처방을 나열하였다. 또 그 뒤에 단미(單味) 처방, 침구법, 양생법 등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여 이를 일관되게 실현해내었다. 『동의보감』이 단순히 중국 의서를 베껴 놓은 복제품으로 창의적 견해가 없는 표절의서라는 오해는 편찬과정에 동원된 역대 의서를 일일이 출전으로 제시한 것을, 단순인용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긴 인식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간 오랫동안 『동의보감』의 독창적인 체계와 우수성을 사장(死藏)시키고 나아가서는 민족의학의 정체성을 흔드는 심각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만약, 『동의보감』이 단순히 중국의서만을 짜깁기하여 베껴 놓은 의서라고 평가되었다면 과연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서 이 책을 30여 차례나 간행하면서 훌륭한 의서라고 칭송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동의보감』은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篇), 침구편(鍼灸篇) 등 5대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다섯 편은 서로 독립적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밀접하게 연계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전의 의서들이 질병명을 중심으로 각각의 주제를 독립적으로만 다루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면 이것은 기존의 방식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하이퍼텍스트 트리구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문헌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출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선천적, 후천적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나간다는 인간관을 바탕으로 인체를 국소적인 관념에서 바라보지 않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증명서,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증명서,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또 하나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임상치료에 있어서의 높은 활용성이었다. 이러한 활용도는 질병을 다각적으로 상호 관련시켜 사고할 수 있는 유연한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본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임상 지식들이 상호연관성 없이 각각 독립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내용들은 내면적으로 상호간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내경편에 담겨 있는 인체 내부에 대한 논의는 인체의 외부를 기술하고 있는 외형편의 내부 논리로 연계하여 언급되고 있으며, 각종 다양한 질병들을 전문적으로 기술한 잡병편의 내용은 내경편과 외형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알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탕액편과 침구편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처방의 기초가 되는 본초(本草) 약물에 대해 기재한 탕액편과 침구치료와 경락, 경혈에 대해 기술한 침구편은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에 나오는 약물과 침구에 대해 총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이들 각 편과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구성하였다. 이렇듯 탁월한 구성 체계와 인체를 자연과 연관시켜 총체적인 관점에서 전일적인 인체관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은 동의보감에서 나타난 우리 의학만의 독창적인 요소이자 우수점이라 할 수 있다.

『동의보감』 신형장부도 완영판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동의보감』 신형장부도 완영판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동의보감』의 학술적 성취

『동의보감』의 학술적 성취에 대해, 흔히 도교적 양생법을 의학적으로 응용한 점, 유가적 성정론(性情論)의 의학적 활용, 단미요법(단방)에 의한 민중의술의 정리, 체계적인 항목 선정, 다양한 학파간 시비와 논쟁을 통합해 정리한 점을 꼽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동의보감』이 이루어낸 불멸의 성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학사상(醫學史上)의 공적들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의학 내적으로 1) 자연과 사람의 밀접한 관계를 질병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첫째가는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점(환경의학적 요소), 2) 사람의 차이를 질병파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체질의학적요소), 3) 정기신(精氣神)과 인체의 구성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점(심신상관의학적 요소), 4) 내상(內傷)을 중심으로 한 질병관을 확립한 점에서 그 성과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둘째, 『동의보감』의 국제성, 세계성이다. 이 책이 단순히 치료와 건강증진을 위해 한국인의 건강코드에만 맞춰 구성하였다면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간행된 후 중국, 일본에서 해마다 이 책을 구하고자 애썼으며, 급기야 많은 분량을 다시 복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황은 청대 학자 능어(凌魚)의 간행사와 일인 원원통(源元通)이 쓴 일본판 발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백성을 보호해주는 신선의 경전”이라고까지 극찬하고 있다. 이렇듯 이웃 나라에서도 『동의보감』에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은 보편적 의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셋째, 『동의보감』의 현재적 가치이다. 이 책이 만일 활자나 고전문화에 대한 대상으로서 과거의 유물로만 남아 있고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현재적 가치는 논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동의보감』에 기반을 둔 처방 활용이 보편화되어 있고, 또 이를 통해 폭 넓게 치료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넷째, 『동의보감』의 미래 가치이다. 『동의보감』은 미래의학으로 가기 위한 역사적, 문화적, 의학적 콘텐츠를 공급하기에 충분한 내적 인프라와 콘텐츠가 구비되어 있다. 온난화를 비롯한 전지구적 환경문제, 인간집단사이에 발생하는 이해충돌과 이로부터 비롯된 각종 정신신경계 질환의 해결방안을 동의보감과 같은 전통 지식으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인 공통관심사로 부감되고 있다. 다섯째, 『동의보감』이 지닌 학문적 포용력이다. 『동의보감』은 의서로써 뿐 아니라 여타 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민속학, 보건학, 인류학, 역사학, 철학, 사회학, 국어국문학 등에서 이미 많은 연구와 담론이 진행되어 왔고 최근에는 피부미용학, 약선식료학, 음악치료학, 미술요법, 예방의학 등에도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아울러 체질분류학이나 유전공학, 분자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로 연계하여 융합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동의보감』이 의학전서로서는 최초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은 세계인들이 놀랄 만한 뜻밖의 경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전문 의학서이기도 하지만 치료와 예방에 대한 많은 지식과 양생건강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건강관리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 제시하고 있는 각종 건강관리 지침들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유용하며 미래에도 여전히 활용 가능한 잠재가치를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