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월간문화재

[2023 봄, 여름호-생로병사의 비밀] 싸우다-병과 무당, 그리고 병굿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08-04 조회수 : 547
병과 무당, 그리고 병굿
한자에서 의사를 뜻하는 의(醫)는 의(.)와 동일한 글자로 본다. 더 직접적으로는 한자 무(巫)를 “의사 무”로도 훈독한다. 한자의 기본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의(醫)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술[酒]을 썼던 데서 기원했다고도 하고, 무팽(巫彭)을 의사의 시조라고도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산해경』에서 보면 열 명의 신령스러운 무당들, 즉 무함(巫咸), 무즉(巫卽), 무반(巫盼), 무팽(巫彭), 무고(巫姑), 무진(巫眞), 무례(巫禮), 무저(巫抵), 무사(巫謝), 무라(巫羅)는 영산에서 약초를 캐서 병자를 고치는 신무(神巫)이며, 모두 옛날 신의(神醫)들이라 하였다.
글 나경수(전남대학교 명예교수)
무속인이 곧 의료인

세상사의 난제 중 하나는 병일 것이다. 우리 단군신화에서도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신시를 열고 360여 사를 다스린다 했다. 그 많은 인간사 중 하나가 병환이었을 것이며, 환웅은 분명 인간이 겪는 병고를 다스리는 신의로서의 역할을 다했을 것이다. 쑥과 마늘의 쓰임새를 생각하면 그가 처방한 이것들은 영약 중의 영약이기도 하고, 또 그의 후계인 단군왕검(壇君王儉) 이름의 뜻에서도 분명하다. 단군이 단골로, 왕검이 임금으로 읽힌다는 주장은 거의 일반론이 되었다. 단군왕검은 제정일치의 수장을 뜻하기 때문에 굳이 조자를 하자면 巫와 王이 합쳐진 巫가 될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추장이 곧 주술사의 역할을 겸유하던 시대에 해당할 것이다.

박진호씨댁 병굿의 제물(1991년), 국립민속박물관.
박진호씨댁 병굿의 제물(1991년), 국립민속박물관.

인간사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풀기 위해 제도가 생기게 된다. 맺힘과 풀림의 원리가 제도나 관습의 생성기반이며 배경인 셈이다. 요 몇 년간 인류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고통과 고난을 겪었다. 지금도 그 위험은 가시지 않고 인류를 적잖이 괴롭히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오게 되면 감염이 되고, 그로 인해 심한 통증을 겪게 되며, 유기적인 사회 체계 역시 혼선 및 마비 등 증세로 몸살을 앓는다. 우리말에서 병에 걸리는 것을 “병이 들다”라고 말한다. 인플루엔자나 바이러스 등의 개념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말이겠지만, 병은 뭔가의 침입 또는 감염의 원인으로 진단한 데서 나온 말이겠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바, 바로 처용설화가 그것이다. 처용의 부인과 함께 잠자리에 든 그의 정체는 외설스러운 외간 남자가 아니라 병을 옮기는 역신(疫神)이었다. 문지기 역할을 하는 문신으로 간주되기도 하고, 무속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처용의 눈에는 요즘 말로는 바이러스, 즉 역신의 존재가 역력히 보였던 것이다. 끝내 “빼앗겼으니 어찌하겠는가”라고 노래하며 물러난 향가 처용가는 신라말의 타락상과 망국을 예언하는 참언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각색된 것이며, 오히려 고려가요 처용가가 기능적으로나 내용으로 보더라도 원형적인 처용의 모습이며, 역신을 감화시켜 치병을 돕는 처용 본유의 신직 자체에 충실한 자료이다. 고려가요는 실상 삼국시대부터 채시관들에 의해 수집된 노래로서 고려 시대까지 전승되면서 궁중 가요로 불린 것들을 말하기 때문에 향가 처용가와 고려가요 처용가를 연대기로 묶는 것은 무의미하다.

무속 현장에서 목격한 병굿과 대체의학

몇 년 전 전국의 무속을 조사하고 다니던 차에 200여 개의 굿당이 있다는 계룡산의 어느 한 굿당에서 내림굿이 열린다는 전언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랄 장면을 목격했다. 여러 건물 중 중앙에 있는 규모가 있는 한 굿당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더니 잠시 뒤 고개를 푹 숙인 환자로 보이는 한 사람을 양쪽에서 두 사람이 부축하고 마당으로 데려와 앉혔다. 그 뒤를 따라 몇몇 무속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 손에 뭔가를 들고 우르르 몰려나오고, 환자의 바로 옆에서는 악사가 쳐대는 큰 꽹과리 소리가 콩 볶듯 했다. 잠깐 사이에 누군가가 두툼한 솜이불로 그 환자를 완전히 보이지 않게 덮어씌웠다. 다른 누군가는 한 말들이 플라스틱 물통에 든 액체를 머리쪽부터 이불이 흥건히 젖도록 쏟아부었다. 금방 냄새가 굿당 마당 전체에 퍼져서 그 액체가 석유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무로 보이는 무녀한 사람이 양손에 신칼을 들고 환자의 뒤에 서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숨돌릴 틈도 없이 외우면서 이불에 덮인 환자를 향해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 칼을 휘둘러대고, 조무로 보이는 다른 한 무녀는 환자의 앞에서 열심히 긴 삼베를 양 갈래로 찢으며 리본체조를 하듯 흔들어댔다.

환자의 온뭄에 부적을 붙이고 신칼로 위혁을 하여 병을 일으킨 잡귀를 몰아낸다.(2016. 7. 23.) ⓒ나경수.
환자의 온뭄에 부적을 붙이고 신칼로 위혁을 하여 병을 일으킨 잡귀를 몰아낸다.(2016. 7. 23.) ⓒ나경수.

일순간에 이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누군가 석유에 젖은 이불에 불을 놓았던 것이다. 큰 꽹과리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쳐대는 채에 날카로운 금속성 굉음을 내뱉고, 삼베를 찢던 무녀는 광란에 가까운 몸짓이며,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도무를 해대는 사이 환자 뒤에 두 개의 칼을 불꽃이 튈 정도로 힘껏 부딪치던 주무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칼로 이불을 걷어내자마자 곧바로 환자를 사람들이 부축하여 굿당 안으로 끌고 가듯사라졌다. 말로만 듣던 “화전치기”의 현장을 목도한 것이었다. 가끔 무속인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를 때린 끝에 맞아 죽고 말았다는 보도를 접하곤 한다. 김광일 선생의 정신분석학 관련 논문이나 이부영 선생의 분석심리학 관련 저서에서 무속의례가 심인성 질환에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가능하다는 연구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화형식 장면을 연상케 한 바로 이 무속 현장에서 목도했던 병굿의 주인공인 그 환자도 몇 년 전부터 흔히 말하는 정신병력을 가져왔다고 했다. 이러한 특수한 형태의 병굿을 비롯해서 다종다양한 병굿이 전국 각지에서 현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소위 의료인류학에서는 미국 인디언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쓰는 약용식물의 60% 이상이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세계 유수의 의과대학들은 소위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전체 의과대학 중 70% 이상의 대학에서 대체의학을 설강하고 있다. 또 여기에 엄청난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다. “병 하나에 약은 백”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병이란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따라서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치유인 이상, 방법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방법은 단지 수단이기 때문에 서구의학 중심주의와 같은 그런 정도(正導)가 있다거나 따로 대체재를 운운할 것이 못 된다. 우리의 전통적인 민간요법만 하더라도 약재형, 자극형, 주술형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역시 민간 지식으로 전승되고 있고, 무속인이 행하는 병굿 역시 그런 주술적 요법의 한 방식이다.

김금화 만구대탁굿 별상마마거리(1997년), 국립민속박물관.
김금화 만구대탁굿 별상마마거리(1997년), 국립민속박물관.

신병과 내림굿, 그리고 병인의 진단

한자의 무(巫)를 『설문해자』에서는 무당이 춤을 출 때 펄럭이는 소매 끝을 본따서 만든 상형자라 한다. 세계 무용사가 모든 무용의 시원을 종교적 의례의 산물로 보는 것은 공통적이다. 질을 달리하는 소통 불능의 두 존재, 즉 신과 인간 사이에 교감이 가능한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춤이라는 뜻이겠다. 몰아의 경지로 이끄는 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표현에 속할 것이며, 그래서 공자도 『시경』 대서에서 시에서 노래로, 노래에서 춤으로 감정표현의 점층을 논하지 않았던가? 춤을 기본으로 하는 의례의 주체인 우리나라 무속인으로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다. 세습무는 신분 상속이라는 사회적 유습에 기인한 반면 강신무는 특별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성무가 될 수 있다. 물론 강신무도 사회적 공인을 위해 내림굿을 하고 영력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본래는 본인이 죽음에 가까운 신병을 겪은 후에 무속인이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마치 반게네프(Arnoldvan Gennep, 프랑스 인류학자)의 통과의례에서 말하는 바, 일종의 인격전환이며 전이지대(liminal zone)를 통과하는 트랜스에 해당하는 과정이겠다. 강신무가 다른 사람의 병을 다스리는 자격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먼저 그 자신이 신병이라고 하는 독특한 병을 겪게 되는데 무속인이 되기 싫어서 병원에 다니거나 기독교나 불교에 귀의하는 도피구를 찾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견디지 못하고 몸주를 모시고 무당이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무병의 증세는 일관되지 않지만, 마치 원시사회에서 입사식이 거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게 하는 것처럼 입무식을 위해서 역시 백약이 무효라는 특수한 병세를 보이면서 마침내 그것이 신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게 되면 갈등의 기로에 선다. 한국 사회에서 무속인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특히 자식에게도 일종의 사회적 수형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의 남부지역에 해당하는 세습 무권에서도 병굿을 앓고 의사(疑似)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가무악을 갖춘 형태의 규모 있는 정식의 굿을 할 수는 없ㄷ지만, 점상을 받고 점쟁이가 되어 점을 생업으로 삼고, 간단한 비손이나 푸닥거리는 할 수 있도록 세습무권에서 허용되는 사람이다. 점쟁이들도 강신무가 겪는 과정을 거치지만, 세습무권에서 굿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점쟁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산메기-비손(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산메기-비손(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세종시 오봉산 산신암에서 무당이 주관하는 주당맥이굿(2014. 12. 23.) ⓒ나경수.
세종시 오봉산 산신암에서 무당이 주관하는 주당맥이굿(2014. 12. 23.) ⓒ나경수.

무속의례의 종류는 매우 많지만, 그중 병굿은 반드시 병인에 대한 진단이 앞서야 한다. 아프다고 무턱대고 굿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병굿과 같은 주술적 민간요법에 속하면서도 무속인에 의해 특정한 병인이 찾아지지 않더라도 누구든 명백히 증세를 진단할 수 있는 경우는 무속인에게 맡기기도 하지만, 굳이 무속인이 아니더라도 마을 누군가가 주당맥이, 물림, 동토잽이, 잔밥멕이기 등을 시료할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병에 걸린 경우, 병인 발견을 위해 강신무나 점쟁이를 찾아 문복을해서 죽은 사람의 조화로 인한 진단이 나오게 되면 맺힌 것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해원굿 성격의 병굿을 하게 된다. 또는 선조의 묘 자리가 좋지 않을 경우 후손에게 현몽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이로 인해 병을 얻게 되었다는 점괘나 나오면 이장이나 개장과 함께 병굿을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따로 병굿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씻김굿이나 오구굿의 형식에 준해서 굿을 진행하면서 병을 준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해원을 해주거나 또는 소망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병굿이 치러진다. 한편 예방의학적인 측면에서 일반적인 굿에 따로 병과 관련된 굿거리를 두어 진행되는 예도 있는데 손님굿이나 별상거리 등이 그것이다.

전염병과 병굿, 그리고 여러 잡귀잡신들

코로나19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이지만, 규모는 다를지라도 유사 이래 인류를 꾸준히 괴롭혀왔던 것이 전염병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전염병이 창궐할 때 별여제(別.祭)를 지낸 사례가 여러 차례 나온다. 삼국 시대부터 내려왔던 팔관회(八關會), 고려 시대에 정착한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 그리고 조선조의 여제는 모두 궤를 같이 하는 것들로서 본래 국가가 나서서 억울하게 죽은 망자들을 위해 하는 일종의 천도위무제였다. 중국에서 주나라시대부터 지내왔던 여제를 조선조 초에 우리나라에 들여와 국가 제사로 지내기 위해 주부군현을 막론하고 전국에 여제단을 설치하여 춘추로 치제를 하였다. 『국조오례의』에서는 14종의 여귀가 나오지만, 현재 유일하게 전해오는 전남 어떤 군단위의 여제위패는 15종의 여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로 재앙과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군이다. 이는 마치 수륙재를 올리면서 거는 감로탱 하단의 귀신들과도 상통하며, 전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군졸들을 위무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팔관회의 내력과도 연계되는 사령들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이었기에 이를 일으킬 수 있는 무작위 혼령들을 위한 치국적 배려에서 바로 의례의 힘을 빈 것이겠다.

조선 시대 국가제사로 모셔지던 여제의 위패(2015. 2. 10.) ⓒ나경수.
조선 시대 국가제사로 모셔지던 여제의 위패(2015. 2. 10.) ⓒ나경수.
무녀가 망자로 분장을 하고 악사들과 문답을 주고받는다(2007. 10. 20.) ⓒ나경수.
무녀가 망자로 분장을 하고 악사들과 문답을 주고받는다(2007. 10. 20.) ⓒ나경수.

그러나 이렇듯 다종다양한 원혼들이 국가나 특정 종교에 의존해서 병인으로 간주되고 치제되던 것만은 아니었다. 민간에서 특히 무속에서 그 사례가 역력하다. 전남 순천지역에서는 병이나 재앙이 들면 소위 삼설양굿을 한다. 길거리를 떠도는 객귀들을 위한 굿이다. 일반적인 씻김굿 절차를 밟지만, 마지막에 도시, 한량, 총각, 처녀 혼신을 비롯하여 총 맞고 죽은 귀신, 소동패 귀신, 벙어리 귀신, 임산부 귀신, 봉사 귀신, 도채비 등을 불러낸다. 무녀는 각각 그런 귀신들의 모습을 간략히 꾸며 악사들과 재담을 나누면서 억울한 사연을 듣고 소원도 들어주며 제상에 제물을 차려 대접도 한다. 일종의 해원의식인셈이다. 원시연극적인 의식이 끝나면 무녀는 환자를 굿청의 가운데 바가지를 씌워 앉힌 다음 칼과 도끼 등으로 몸에 씌운 잡귀잡신들을 쫓아내고 환자의 쾌유를 비는 축원으로 끝을 맺는다.

무녀가 장님으로 죽은 중천으로 분장(2008. 8. 19.) ⓒ나경수
무녀가 장님으로 죽은 중천으로 분장(2008. 8. 19.) ⓒ나경수

서남해안 일대에는 무속수륙제라는 것이 전승되고 있었다. 마을에 병자가 생기거나 우환이 들면 역시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을 위무하는 굿이 마지막 거리로 진행된다. 중천거리라는 것으로 장님중천, 해산중천, 남사당패중천, 농부중천, 전둥발이중천, 꼽사중천, 광대중천, 행인중천, 주모중천 등을 불러내서 위로를 해준다. 예를 들면 장님중천을 할 때는 앞을 못보고 죽은 장님처럼 지팡이를 들고나와 서러움을 읊고 나면 마치 눈을 뜬 것처럼 말하고, 해산중천에서는 아이를 낳다가 죽은 귀신처럼 아이를 밴 것처럼 바가지를 배에 대고 들고나와 하소연을 하고 나면 마치 순산을 한 것처럼 달래서 보내주는 굿놀이가 계속된다. 억울함을 무가와 무의로 풀어줌으로써 병과 우환을 걷어가도록 하는 역시 원시연극적 무의가 진행된다. 다른 사례로서는 환자의 온몸에 부적을 붙이고 칼로 위혁을 하면서 몸에 들어와 병을 일으킨 잡귀잡신을 몰아내는 병굿의 굿거리도 있다. 동해안의 병굿에서는 장군굿거리를 연행한다. 장군의 힘으로 잡귀잡신을 물리치는 굿거리이다. 검은 보자기나 빨간 보자기를 환자에게 씌운 다음 오곡을 사정없이 던진다. 오곡으로 나쁜 살(煞)을 쳐내는 것이며 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세 가지를 잘라서 환자를 두드리며 잡귀잡신이 멀리 도망하도록 위협을 하기도 한다. 동해안의 세습무들은 직접 접신하거나 공수를 주는 대신 대받침를 하여 병인을 찾는 경우도 있다. 마을굿에서 대잡이를 하는 것과도 유사한데 병굿을 의뢰한 집에서 누군가 대를 잡고 있으면 귀신이 빙의하여 무당과 서로 말을 나눈다. 무당이 귀신의 조화로 환자가 생겼느냐, 귀신의 조화라면 그 귀신은 누구냐, 귀신이면 오늘 굿을 잘 받았느냐, 또는 다른 데로 갈테냐 등을 물으면 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빙의한 귀신이 되어 대답을 한다. 전라도 지역의 병굿에서도 보이는 현상으로서 대개 손대잡이라고 불러 병을 일으킨 원인을 찾고 그에 따라 대처하는 방식이다. 한편 병굿이나 우환굿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대수대명(代數代命)이다. 환자의 수명을 대신할 희생양을 쓰는 것이다. 대개 살아있는 닭이나 오리를 쓰는데 환자의 옷을 입혀 방생하거나 죽은 닭을 쓸 경우 삼거리길에 묻기도 한다. 『전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황해·평안남북 편)』에 따르면 영산굿이라 하여 잡귀에 씌어 병이 난 경우 개를 잡아서 몸속에 짚을 넣어 박제한 다음 멀리 보내는 굿거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