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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박용순’ 편 (3) - 마음과 뜻만 맞으면 잘 할 수 있어요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956
(정정정혜영자)

박용순 육성 // 하나 원이 맨 밑에 조교라도 하나 만들어놓고 내가 죽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제 소원이고 강강술래가 제일 하러 오거든요? 나한테 안 물어봐도 다른데 물어봐도 다 알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 화합하고 더 발전해서 잘해나갔으면 쓰겠어요. 하는 것만 갖고도 마음과 뜻만 맞으면 모든 것이 잘할 수 있어요.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강강술래, ‘박용순’.
제3화, 마음과 뜻만 맞으면 잘 할 수 있어요.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최소심 보유자의 전수생으로 들어가다>
#1. 1976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최소심 집

(소고 치는 소리)
중년용순 // (안으로 들어가며) 최소심 선생님, 박용순 왔어라!
김국자 // 김국자도 왔어라.
박윤자 //박윤자도 강강술래 배우러 왔어라!


(시골집 방문 여는 소리)
최소심 // (문 열고 나오며) 아이고, 우리 전수생들 왔능가?
다같이 // 안녕하시지라?
최소심 // 전수생들 옹께 기분이 좋소.
용순 // 아따~ 오늘 소고치시는 소리도 좋았어라.
최소심 // 친정인 덕병서 맨 그란 거만 배웠제. 거그 사람들은 농악을 잘 칭께.
김국자 // 여그 둔전서 농악할 적에도 자주 봤지라. 선생님은 멋쟁이여.
박윤자 // 선생님이 머리에 하얀 띠 두르고 소고치면 기가 맥히지라.

박용순 육성 // “최 선생님이 문화재가 되니까, 최 선생님이 자기 밑에다 전수생을 하나는 둬야 되겠다, 이 동네에서. 그랬거든요. 처음에는 나는 애기를 키우고 있고 또 일도 많고 그러니까 나는 안 한다 했어요. 처음에. 안 한다고 몇 번 했는데, 그때가 금성초등학교 운동회 날인가 조담환 씨가 오셨드마. 와서 소리를 해보라고 하더만, 강강술래를 한번. 그러니까 뭣도 없이 해봤어요. 하니께 나하고. 국자하고, 윤자하고 서니를 전수생으로 하라고 합디다. 그때.


<장학전수생이 되다>
#2. 1980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집

맏딸 // 엄매, 이거 강강술래 카세트테이프 빼도 되제?
중년 용순 // 쪼까 더 들어야하는디?
맏딸 // 난 영어 숙제 해야하는디~
용순 // 그람 30분만 더 듣고 갈텡게 그 뒤로 들어야.
맏딸 // 아휴 엄맨 낮에 밭에서도 강강술래만 듣제?
용순 // 칼을 뽑았으면 뭐라고 썰어야 쓸 거 아녀.
남편 // 향아야. 니 엄매는 건성건성 하는 벱이 없어야. 느그도 엄매 닮아야 성공하제.
맏딸 // 야, 열심히 하고 있어라.

(진도 들노래)
나레이션 // 1996년에 진도와 해남의 강강술래가
국각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 두 지역이 협력하며 전승하였습니다.
진도문화원 설립자이자 진도 다시래기 보유자인 조담환 선생이
전수 활동을 돕고 가교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박용순 육성 // “박 선생님이 그때 이렇게 청어엮기를 돌잖아요. 원으로 만들어서 뛰는데 지금 우리가 전통 하고 있는 것이 최 선생님이 하는 것이여. 안 돌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수영, 정순엽이, 읍에 종숙이 모두 같이 들어갔어요. 같이 한 번에. 전수생이 되었어요. 진도 민속은 딴 것은 몰라도 다시래기, 씻김굿, 들노래, 강강술래는 전부 조담환 씨가 한 것이에요.”


<둔전리 엄매들과 국풍 ‘81 공연 연습하다+순서 설명>
#3. 1980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최소심 집

중년용순 // 최 선생님, 나오시지라. 둔전리 엄매들이 다 모였어라.

나레이션 // 서울에서 열리는 국풍 ‘81 공연에는
둔전리와 동외리, 해남 우수영,
이 세 마을이 강강술래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함께할 땐 읍에서 연습했지만 둔전리 사람들만 할 때는
최소심 보유자의 집 위에 너른 마당에 모였습니다.

(시골집 방문 여는 소리)
최소심 // (문 열고 나오며) 아따, 오늘도 추석 맹기로 보름달이 환햐. 엄매들이 한 마흔 명쯤 되는가?
용순 // 야, 저거들 맘 먹고 옹께, 몸 풀고 있어라.

(강강술래 노래)
박용순 육성 // “지금은 우리가 육박에 이렇게 맞춰서 될 수 있으면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때 우리는 박도 없었어요, 강강술래는. 그러니까 길게 빼고 하고 최 선생님 하는 대로 배워서 그렇게 해왔어요. 앞에서 “이렇게 하라” 그라면 따라서 하고, 또 “오케 해라.” 하면 따라서 하고. 처음엔 강강술래 하다가 놀이할라믄 딱 세워놓고 가르쳐. “이렇게, 이렇게 해라.” 그러면 그렇게 하고. 첨엔 못하니까 하나씩, 하나씩 어깨에 얹어주고 그랬어요. 애타게 가르쳤어. 시골 엄마들이 얼마나 잘하것어. 하루 종일 밭에서 밭매고 밤에 와서 하는데요.”

(가장 느린 긴강강술래) UP –DOWN
최소심 // 강강술래는 될 수 있으면 6박자에 맞춰 하면 좋제. 안 되면 소리 나가는 대로 발만 맞춰. 첫소리 강-에 왼발, 다음 강-에 오른발, 계속 바꿔 노면 되아

(긴강강술래)
최소심 // 그라고 앞에 세 번째 사람 발뒤꿈치를 눈이로 보고 있음 키가 적건 크건 고개가 다 같아. 돌 때는 오른짝으로 돌고!

(중강강술래)

나레이션 // 고정된 사설 없이 놀이로 즐겼던 강강술래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공연예술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문화재 지정과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이 그 계기였습니다.
이후 진도와 해남 우수영의 전수자들은 사할린과 일본 공연에 참가하며
세계로 무대를 넓혔습니다.

박용순 육성 // “그때 일본 NHK 방송국에서 진도의 민속으로 우리 오라고 할 거인데 한번 시험을 보자 그래서 왔었어요, 방송국에서. 와서 남도들노래, 씻김굿, 다시래기, 강강술래 이렇게 네 종목을 했는데 강강술래를 오라 했어, 채택이 되었어. 그래서 일본으로 가게 되았는데 처음에는 가니까 음식이 입에 안 맞더라고요. 일본 동경, 잊어불도 않네. 국제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호텔에서 잠을 잤어요. 거기는 강께 물건이 비싸서 그 호텔에 있는 데서 음료수 하나도 못 먹겄더만. 또 음식이 안 맞아도 간장에 찍어서 밥을 먹었어. 그랬는데 만찬회를 하는데, 몇 개국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큰 체육관 같은데 안에가 모였는데 발도 못 딛게 모였어. 아주 돌아설 수도 없이. 그래서 전부 넘의 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키가 크고 그런 사람들도 우리 강강술래 한 다음에 걸어다님시로 강강술래 하더라고요. 걸어가면서 저거들까지 해, 막 그렇게.”

나레이션 // 1993년 8월 2일,
박용순은 국가무형문화재 강강술래 보유자로 인정되었습니다.


<1993년 강강술래 보유자로 인정받다 + 끝없는 배움의 길>
#4. 1993년, 박용순의 집

동네사람(노인 남) // 용순이 자네는 둔전리의 자랑이여!
동네사람(노인 여) // 허구헌날 강강술래만 하드만 문화재가 됐어야!
남편 // 아따, 우리 집 문이 닳겠어야. 여보, 욕봤소.
친척들(시아재1, 50대) // 아따 형님이 형술 잘 만낭께 집안이 잘 됐소
(동서, 40대, 여) // 형님, 고생 많으셨어요.
(조카, 남) // 큰어머니!
(조카, 여) // 외숙모, 축하드려요!
(시아재2) // 우덜도 형수맹기로 강강술래 좀 불러봅시다!

박용순 육성 // “내 밑에 동서가 5명이잖아요. 한 번도 싸워본 적도 없고 시아재들도 다 형수를 엄마처럼 생각하고 형님을 아빠처럼 생각하고 그러니까 화목하고 잘 사는가 보죠. 지금 작은집 애들 전부 합치면 73명이에요. 수가. 그 수가 명절 때 못 오면 못 와도 60명씩은 1년에 2번씩은 와요, 집으로. 돼지 한 마리 정도 저녁에 다 구워서 먹고, 술 먹고, 사위들까지 다 모태니까 아주 재밌게 놀고 하다 하다 할 것 없으면 윷도 놓고 아주 그렇게 좋아요.”


#5. 1994년, 광주 한 공연장

나레이션 // 박용순은 그토록 원하던 강강술래 보유자가 되었지만
앞에 서야하고 전수해야 하는
보유자로서의 책임감은 무거웠습니다.

이임례 // 아따, 박용순 보유자님, 오셨어라~ 광주서 소리허는 이임례여라.
용순 // 오매, 나가 보유자라고 넘한테 말하기 싫어라. 소리도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라.
이임례 // 인자 소리도 한자씩 해야제. 강강술래 보유자가 돼갖고 어디 가서 노래하라 그라믄, 한 절도 못하면 쓰겄어요?
용순 // 그라지요. 나가 이대로 멈춰서선 안 되지라. 저그 우리 애기들이 광주서 공부하는디 이임례 명인이 나 소리 좀 갈쳐줄라요?
이임례 // 나야 영광이지라.

(육자배기)
박용순 육성 // “종숙이 하고 둘이 우리 애기들 집에서 한 달을 댕겼던가, 매일 닭전머리로 노래를 배우러 댕겼어. 댕김서 단가 배우고 흥부 박 타는 대목 그거를 끝까지 하고 배우고 민요하고 흥타령 그런 것은 육자배기 배울 때는 다 갔어요. 우리 강강술래. 국자, 종심이, 종숙이, 복자, 부덕이 전부 같이 같이 댕겼어요. 그때 많이 했죠. 육자배기도 “내 정은 청산이요.” 그런 것도 하고, “삼월 삼짇날~” 그런 것도 하고, 보유자 됐다, 문화재 됐다고 넘한테 그런 소리 안 들으려고 내가 그때 배워갖고 관광할 때 우리 동네 사람들 관광할 때 내가 그 흥타령 다 했어요. 그때 그랑께 아휴, 문화재 아주 자격이 충분하다고, 그 사람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이. 그러고 웃고 그랬는데.”


#6. 2006년 이후, 진도실버 민속예술단

나레이션 // 박용순 보유자의 배움은 70대가 돼서도 이어졌습니다.
이번엔 장구와 북이었습니다.

(북 치는 소리)
박용순 육성 // “내가 그렇게 장구도, 장구라고 하믄 아주 보기도 싫고 했는데 이상하니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실버예술단에를, 노인들만 하는 예술단에를 갔어. 장구도 한번 쳐보고 북도 쳐보고. 그래도 또 보기에 그냥 했는 거야. 국악원에서 공연을 하게 돼서 북춤을 추라고 해서 북춤 췄지. 은영이랑 잘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걸 배운께 또 얼른 배워집디다, 그것이. 그래갖고는 지금 말하는 일자리처럼 가는 노인당에 의해서 했고 장구도 음악을 댕김서 배웠단 간에 어쨌든 간 조금 했는데 아주 열심히 배우면 금방 하것십니다.”

나레이션 // 박용순 보유자는 ’진도실버민속예술단‘에서도
강강술래를 가르쳤고 함께 전국으로 공연을 다녔습니다.
무대의 크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녀가 서는 무대는 깊어지고 확장되었습니다.

박용순 육성 // “장터에서 무료 공연했지. 그때만 해도 실버예술단이 처음 해갖고 그런 것 해갖고 하니까 장터 댕김시로 서럽게 했어, 그때는. <닻배노래>도 하고 강강술래도 내가 그때 좀 갈쳐갖고 인천 가서도 한 번 했고. 청와대 두 번 갔어, 두 번”


<박용순의 꿈>

#7. 2011년 2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졸업식

(졸업식 노래)

선생님 // 이상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용순 // “항상 없어갖고 못 배우고 그란 것이 마음에 한이 되드마. 그래서 내가 시아재부터 갈칠라고 노력했고, 또 애기들도 어찌든지 갈쳐야 쓰겄다 그라고. 내가 항상 배워야 쓰것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 갈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중학교, 고등학교 마치고 낭께 일흔여섯이 돼써라.
선생님 // 진도에서 세 번이나 차를 갈아타고 오시면서도 안 빠지셨잖아요. 박용순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용순 // 늦더라도 배웅께 한 풀었어라.

(박용순의 강강술래)

나레이션 // 소녀시절 동네친구들과 추석에 함께 하던 놀이, 강강술래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라 되기까지
그녀는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했습니다.
8남매를 낳아 기르고, 여섯 시동생을 돌보며,
어머니로, 며느리로, 농부로 열심히 살아온 박용순 보유자의 삶이
그녀가 부르는 역동적인 강강술래에 녹아 있습니다.


< 마무리 코너 –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나레이션 // 2009년 강강술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민속놀이이자 문화재로 지정된 덕분에 학교에서도 널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 현장에서 강강술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경인교대 음악교육과 김혜정 교수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김혜정 // 정말 강강술래를 지정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교육에서도 강강술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요. 학생들한테 놀면서 노래하면서, 그러니까 노래와 춤, 동작이 함께 가는 그런 놀이는 굉장히 교육적으로 효과가 크거든요. 외국 같은 경우는 그거를 다 만들어서 짜서 하느라고 고생인데 우리는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거죠, 콘텐츠가 있고.
그래서 이런 놀이들이 없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강강술래라는 큰 틀 안에 여러 놀이들을 조합해서 한 세트로 이렇게 만들어서 남겨두신 덕분에 저희가 굉장히 많은 혜택을 입고 있지 않나. 그때 그렇게 해놓지 않았으면 어땠을 뻔했나. ‘다 없어지고 사라졌을 뻔했던 그런 놀이들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저희 학교의 특수교육과 쪽에서 자폐아 아동 대상 캠프하시는 교수님이 계시는데 자폐아 아동한테 가장 치료 효과가 좋은 게 강강술래라고 말씀하세요. 왜냐하면 자폐아 아동들은 남들 손 잡는 거 진짜 싫어한대요. 만나서 뭔가 계속, 몸으로 뭔가 하는 게 싫잖아요. 그런데 강강술래 너무 재미있으니까 그 재미를 위해서 잡게 되는 거죠. 싫은데 놀이는 하고 싶어. 어떤 마음이 이기느냐. 강강술래를 하게 되는 거예요. 재미있어서. 그렇게 하고 나서 캠프가 끝났을 때 뭐가 제일 재미있었는지 그림 그리기를 하면 다 강강술래를 그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해보니 강강술래가 최고의 치료제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자폐아뿐만 아니라 일반 아동들한테도 요즘처럼 정말 단절이 심한 그런 때일수록 서로 만나고 손을 잡고 돌고 같이 노는 그런 놀이가 엄청 소중하죠. 많은 걸 해줄 수가 있죠. 인성, 협력 이런 마음들. 또 가사를 만들어보면서 창의성을 자극을 해줄 수도 있고 감정을 토로하는 그런 걸 가르쳐서 결국은 자기 정서 관리를 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강강술래, 박 용 순. 세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정미숙, 정영웅, 전해리, 오민혁, 한만중, 이한솔, 류지아, 김단.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조성도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한 가정의 어머니와 농부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도 만학의 꿈을 이루며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온 강강술래 보유자 박용순의 생애를 담은 오디오 다큐드라마이다.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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