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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줄다리기 ‘김종곤’ 편 (2) - 참으로 방대한 놀이문화구나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930
(영산줄다리기 중 사람들 소리, 풍물놀이 등 현장음)
영차~~

김종곤 육성 //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저래 큰 줄을 만들었는가. 그 규모로 보나. 사람이 웅집하는, 하물며 마산서도 온다고 했습니다. 그 줄을 구경할라꼬..
그런 규모로 봐서 참으로 방대한 놀이문화구나, 대단한 행사구나.”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영산줄다리기, ‘김종곤’.
제2화, 참으로 방대한 놀이 문화구나.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사라진 거죠>
#1. 1966년, 영산면 죽사리 고향 집

(대문 팍 열고 들어오는 소리)
어머니 // (급히 나오면서) 아이고 종곤이 왔나? 문 좀 얌전히 닫아라!
종곤 // (술 취해서-엄마라 부르는) 엄마~ 지는 글렀어예.
어머니 // 또 싸웠나? 명절에 고향 왔으면 잘 먹고 쉬다 가야지
와 이러고 다니는데?
종곤 // (술 취해서) 엄마~ 뭘 할라해도 안 되고, 진 안 될낍니다...
어머니 // 그래가 맨날 술이가? 오늘도 마이 먹었나보네.
종곤 // (술 취해서) 엄마도 알지요?
지가 돈이 없어가 두 번이나 학교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뭘 해도 분이 안 풀려요...켁켁...(기관지염 기침)
어머니 // 그기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카나?
종곤 // 이젠 암껏도 하고 싶지 않습...켁켁...(기관지염 기침)

김종곤 육성 // “괜하게 사람들하고 싸우고 싶고, 내적으로 폭발이 삼자한테 싸움으로 번지고. 그래서 더러 명절 때 집에 내려오면 싸움을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저 밀양에 있을 때도 밀양 태권도 도장 그 당시부터.. 복싱을 배운 것은 아닌데. 좀 부랑스러운 그런 기질이 있었어요. 싸워서 생애 남한테 뚜드려 맞아보는데가 없었거든. 그러니까 좀 멍시렁대고 꼭 함남 그 성격맹키로 그래 변했어요.”


(식구들 밥 먹는 소리)
어머니 // 종곤아, 해장국도 좀 떠봐라.
종곤 // (얌전히) 예, 먹고 있습니다.
아버지 // (숟가락 놓으며) 안 되겠다. 오늘은 이야기 쪼매 해보자.
우선 군대 영장 나온 그긴 우짤낀데?
종곤 // 저...이번에도 연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켁켁...(기침 약하게)
명찰 가게에 먼지가 많아갖꼬 기관지염이 잘 안 낫습니다.
아버지 // (언성 높이며) 그라믄 몸을 잘 살피야하지 않겠나?
부산, 마산, 진해, 또 어딨나? 서울이고 인천까지,
와 그래 싸다니는데? 쌈박질 할라꼬 다니나?
종곤 // 아입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 마이 맞지는 않는 거제?
종곤 // (살짝 흥분해서) 하모요. 싸움 함 붙으면 두세 빵 먹고
떨어집니다. 지 말고 상대방 말입니다. 켁켁...(기침 약하게)
아버지 // (역정을 내며) 아휴.. 그라믄, 서른 넘어갖꼬도 이라고 살 끼가?
종곤 // (어렵게 말꺼내는) 저... 정식으로 명찰 가게를 차리고 싶습니다.
땅 팔아가 밑천 좀 해주시면 꼭 갚겠습니다! 켁켁...(기침 약하게)
어머니 // 곤이 아부지, 그리 합시다.
아버지 // 흠... 마, 마. 그기 원이라믄 해봐라!

(불효자는 웁니다 / 진방남)
김종곤 육성 // “밀양 영남루 앞에. 공원 앞에다가 가게를 내서.. 정식으로 내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때 토지 1,050평 장사 밑천 할라꼬 팔아달라니까 바로 불평 없이 그걸 팔아줬어. 그런 걸 해주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생명과 같거든요.. 토지는 평생 농사군이 농노만 했던 그 농사군이.. 일곱 식구의 생명을, 생명선을 제가 팔아 간 건데 부모와 고향에 대한 큰 빚이었죠.”


<베트남 미군부대에서 수선사로 일하다>
#2. 1968년~, 베트남

(비행기 이륙 소리)

30대 종곤 // 1968년 9월, 그때 전 서른한 살이었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김종곤 육성 // “저도 뭐.. 탈출구가 아무 희망도 없는. 그런 탈출구가 월남에 가게 한 원인이 됐을 겁니다. ‘죽으면 어때?’ 그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죽으면 어때 전쟁터면 어때?’ 그런 마음이 들었을 깁니다. 그 방황하던 때가.”

(사이렌 소리)
30대 종곤 // 처음엔 미국 특수부대가 있는 최전방 캠프에 있었습니다.
재단사, 세탁사와 함께, 전 마크 달고 이름 새기는 수선사로
일했어요. 사이렌이 자주 울렸지만은 두렵진 않았습니다.
이후에 다낭의 미해군병원, 판랑의 미공군기지까지
모두 18개월을 베트남에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갖꼬 부모님 땅을 되찾아드리고 싶었습니다.

(김추자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김종곤 육성 // “1970년 4월 1일날 제가 베트남에서 귀국을 해가지고. 그러니까 제가 18, 17개월 월급 중역이 7급 공무원 25년의 그것과, 노력을 모은 거 하고 같다. 누님이 관리를 했는데 남동생 둘이 가게 내고, 자기 떡가게 하고 그런데 많이 썼어요. 그러나 저는 화를 안 해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돈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부모 공양하면서 살 수 있겠다.”


<금의환향-집도 짓고 결혼도 하고>
#3. 1970년, 영산면 죽사리 고향 집

(토기왓집 짓는 소리)
동네사람1(남) // 형님, 새로 짓는 토기왓집이 기깔납니다.
아버지 // (술 기운에 더 기분 좋아서) 하모, 이제 곧 완공이란다.
동네사람2(여) // 또 술 한 잔 하셨어예? 종곤이 덕분에 기분 좋지예?
아버지 // 하모. 어깨춤이 덩실덩실 난다.
자슥이 돈 마이 벌어왔지, 집도 동네서 젤 잘 짓지,
같이 산다카지, 더 이상 원이 어딨겠나.
어머니 // (살짝 타박) 당신도 참, 하나 있거든예. 종곤이 장가보내야지요.
동네사람1(남) // 맞습니다. 손주도 봐야지예.
동네사람2(여) // 그라지예, 지가 중신 좀 설까예?

(청실홍실 /송민도)

김종곤 육성 // “결혼을 아주 늦게 했습니다. 33살인데 집사람은 24살일 때, 아홉 살 차이입니다. 우리 부모도 일곱 살 차인데 아홉 살 차입니다. 차이가 많이 났어. 중매 결혼을 해서. 처가 본가에서 구식으로. 우리 집도 잔치를 하잖아, 처가 하지만. 친구들뿐 아니라 동네 사람, 아는 사람 전부들 다 와서 우리 집에도 잔치를 합니다.”


<조성국 // 선생님과의 운명적 만남-양파채종사업>
#4. 1972년, 영산단위농협

30대 종곤 // 결혼하고 2년 뒤에 아버지의 바람대로 취직을 했습니다.
영산단위농협에서 비료 판매를 했어요.
마스크도 끼지 않고 독한 석회비료를 만져서 그런가,
신장염에 걸려가지고 2년을 치료했습니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꼬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분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1974년 2월이었습니다.

#5. 1974년, 창녕군양파조합

(내일은 해가 뜬다 / 쟈니리)
종곤 // (문 열며) 저, 창녕군양파조합에 계시는 조성국 선생님,
만나 뵈러 왔습니다.
직원 // 아, 조합장님예?
조성국 // (다가오며) 아니 이게 누꼬?
가만있어 봐라. 까까머리 중학생, 김종곤이, 자네 맞나? 이기 얼마만이고?
종곤 // 20년만입니다. 선생님.
조성국 // 그간 종곤이 너한테 여러 일이 있었다는 건 내 알고 있다.
종곤 // 지도 연락은 못 드렸지만은 선생님이 옥고 치르셨단 얘기 들었습니다. 마이 힘드셨지요?
조성국 // 4.19 때 교원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앞장 좀 섰다.
그래 학교도 못 돌아가고 이래 됐지만,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아.
3.1민속문화향상회 세운 것도 알지?
종곤 // 그람요. 거서 일제 때 중단됐던 영산줄다리기도 다시 하잖아요?
선생님이 1969년도에 문화재 되신 것도 압니다.
조성국 // 영산줄다리기, 니도 배와볼래?
종곤 // 아입니다. 지는 구경만 할랍니다.
조성국 // 그래. 종곤이 니한텐 따로 부탁이 있다. 양파조합 사무 좀 봐라.
종곤 // 저 그기... 지금은 아버지와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조성국 // 니가 농사 짓는 데 아무 지장 없이 할 수 있다.
대신 봉급이 아주 미약하다.
종곤 // 그건 괜찮습니다. 불러주신 것만도 감사하지요.
조성국 // 지금은 조합이 좀 힘들지만은 니캉내캉 살려보자.
우선 채종 연구부터 마무리해야지.

김종곤 육성 // “양파 채종을 한국에서 제일 먼저 했습니다. 한 사람이 조성국입니다. 양파 씨앗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에서 ‘천주황’이라는 고유한 명칭의 일본 종자를 수입을 했는데, 양파조합에서 종자를 자급자족하도록. 그것은 역시 조성국 선생님이 일제 농잠학교를 다니면서 교배에까지 아는 지식이 있어서 그렇게 종자를 생산을 하게 됐습니다.”

40대 종곤 // 그렇게 전 1974년부터 11년간을 창녕군양파조합 상무로 지내고, 이후엔 조합장도 하면서 양파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1978년에 직책 하나를 더 맡았는데, 그기 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까지는 조합 일이 바빠서 줄 땡긴다 카면 구경만 했습니다.

(영산줄다리기 중 사람들 소리, 풍물놀이 등 현장음)

김종곤 육성 // “재래시장이 줄 만드는 쪽에서 행해졌거든요. 그래서 줄 만드는 날 퍼뜩 갔다 퍼뜩 내려와서 줄 나가는 거 구경하고, 줄 땡그는 구경하고 그런 시기였지.”


<3.1민속문화향상회 총무+ 줄에 입문하다>
#6. 1978년, 조성국 // 선생님 집

(정열의 차차차 / 김용만)
종곤 // (술 좀 마신) 사모님, 또 실례 좀 하겠습니다.
조성국 아내 // 에고, 종곤 씨도 일잔 했나봐예. 이이가 또 불렀나보네.

(술잔 부딪치는 소리)
조성국 // (취기 약간) 뭐하나? 마시라!
종곤 // (취기) 지도 좀 한다는 술고랜데, 선생님 정신력은 대단하십니다.
조성국 // (취기 약간) 종곤아, 임종고이. 오늘은 내 할 말이 있다.
니 3.1민속문화향상회에서 줄다리기 사무도 쪼매 봐라!
총무라 캐도 월급 없이 그저 봉사하는 자리다.
종곤 //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다 해야지요.
그라믄 줄 만드는 데도 왔다 갔다 해야겠네예?
조성국 // 행사 준비할라믄 그래야겠지.
조성국 아내 // 그카다가 종곤 씨도 영산줄다리기 전수생이 되겠어예.
조성국 // 나처럼 보유자가 되면 더 좋지!

김종곤 육성 // “전수 장학생 때는 워낙 내적으로 선생님한테 전수교육도 받았지만은 워낙 1년에 아마 10개 단체나 대학에 줄 지도하러 워낙 다녔습니다. 그랬으니까 전수 장학생이 인정되고 나서 자연스럽게 제가 줄에 접하는, 자연스럽게 그걸 배우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줄 기능을 익혀온 것 같습니다. 줄 기능이라 함은 단지 줄을 꼬는 그 문제뿐 아니라 놀이를 어떻게 어울여 나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어울여 나갈 것인가 그러한 것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죠.”


#7. 1983년 4월, 고려대학교

(행복의 나라 / 한대수)
종곤 // 선생님, 고려대에 다 왔습니다.
조성국 // 그래, 볏짚들하고 재료들 다 내리라. 종곤아, 오늘은 영산줄이 처음으로 대학교에 서게 된 날이다!

40대 종곤 // 어릴 적에 배움의 갈증을 채우지 못해 좌절만 했었는데,
이제는 대학에서 줄 만드는 법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영산줄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 마무리 코너-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영산줄다리기 풍물놀이, 사람들 함성 등 현장음)

나레이션 // 여러분은 지금 김종곤 보유자의 고향 영산에서 매년 삼일절에 열리는 영산줄다리기 현장음을 듣고 계십니다.
사실 줄다리기 그 자체의 행위는 3분이면 끝납니다. 3분을 위해 1년을 준비해온 값진 노동, 함께하는 대동의 힘, 풍요와 복을 기원하는 하나된 마음이 영산줄다리기에 녹아 있습니다.
경주대학교 허용호 교수로부터 영산줄다리기의 특징에 대해서 들어보겠습니다.

허용호 // 맨 처음에 아무리 논농사, 벼농사 지역이라 할지라도 줄을 제작하는 데 쓰이는 짚이 만만치 않게 소용이 되기 때문에, 또 여기저기서 모아내는 작업들이 있고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크게 거대한 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작은 줄들을 만들어내고, 가닥줄들을 만들어내고, 그다음에 영산줄다리기를 쌍줄다리기라고 하는데 암줄과 숫줄이 있어서 두 줄을 이렇게 엮어서 연결시켜서 당기는 걸 쌍줄다리기라고 하는데 두 줄이 서로 맞닿고 연결시키는 이 부분들을 줄머리라고 그러는데 이걸 만드는 작업들, 그다음에 줄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고 소금도 뿌리고 밟아주는 작업들, 그러고 나서 줄을 뭉쳐서 대규모의 줄로 만드는 작업들 이런 과정을 쭉 거치는 게 적어도 15일에서 한 달 이상 걸리게 되고요.
오해하기 쉽게 착각을 하는데 줄다리기 그러면 그야말로 줄을 당기는 행위 자체만을 생각하는데 그 핵심은 당기는 게 아니라, 당기는 건 지극히 일부분일 따름이고, 짚을 처음부터 모아서 줄을 제작하고 다 만들고 나서 줄을 당긴 당일 날 몇 시간에 걸쳐서 줄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어깨 위에 올려서 옮기는 그 작업들, 줄 옮기기 작업인데 그 과정에서 서로 한바탕 놀기도 하고 그다음에 줄을 당기는 것, 그다음에 줄을 당긴 이후에 줄을 처리하는 과정들 이 모든 게 다 줄다리기라는 명칭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점.

나레이션 // 영산줄다리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줄을 끊어서 집으로 가져갑니다. 줄을 지붕 위에 던져놓으면 1년간 집안이 평안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기 때문입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영산줄다리기, 김 종 곤. 두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류다무연, 전해리, 이민규, 한만중, 이한솔, 김단, 김혜령,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조중희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마크 기술자와 농사꾼 그리고 영산의 대동놀이인 영산줄다리기를 지키고 전승하는 '줄꾼'으로 살아간 영산줄다리기 보유자 김종곤의 생애가 담긴 오디오 다큐드라마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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