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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줄다리기 ‘김종곤’ 편 (3) - 행동으로 움직여야 영산줄은 된다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1017
(아침이슬 연주곡)

김종곤 육성 // “내 모토가 ‘정직하고 성실하게’인데, 내 스스로 판단하기에는 ‘그래도 이 세상 정직하게 나는 살아왔다, 정직이 내 생을 지배했다.’ 이렇게 생각해서 조교면 조교, 기능보유자면 보유자로서, 농사꾼으로서 내가 모든 일에 성실하고 진실했다고 봅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영산줄다리기, ‘김종곤’.
제3화, 행동으로 움직여야 영산줄은 된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살아있는 줄(이화 대동제, 고려대) +줄다리기 순서>
#1. 1983년, 이화여자대학교

(트럭 타고 와서 멈추는 소리)
(트럭 내리고 문 닫는 소리)
40대 종곤 // 선생님, 오늘은 이화여대에 왔습니다.
조성국 // 오늘도 뜻깊은 날이다.

(학생들 뛰어오는 소리)
이대 학생회장 // (다가오며 반갑게) 조성국 선생님, 이화여대 학생회장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성국 // 아이 아입니다. 오면서도 설렜는데 와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여학생들만 있는 학교에 우리 영산줄이 온 건 처음입니다.
여기 김종곤이라꼬, 전수 장학생입니다.
종곤 // 이화 대동제에 참여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대 학생회장 // 아~ 네. 이번 대동제에선 영산줄다리기가 가장 인기인 거 같아요. 벌써부터 줄 만든다고 많이들 모였거든요.

(볏짚 부스럭거리는 소리)
여대생1 // 선생님, 이 볏짚들 다 옮겨서 줄 만들면 되나요?
종곤 // 지가 따라가갖꼬 줄 만드는 거 갈쳐주고 같이 하겠습니다.

김종곤 육성 // 저 남성의 줄을 여성의 줄로 만든. 줄은 남성 위주고, 여자들은 재수없다고 땡글지도 말라고 그랬는데 옛날 우리 고장에 옛날에. 여자가 땡글면 줄 터진다, 안 된다. 그래서 이화여대 줄은 남다른 애착이 가고. 남성 전용의 영산줄을 여성이 참여하는 여성의 줄로 만들었다. 강인하고 억센 그 여성의 줄. 이화여대가 여성의 줄로 만들었다커는 재창출과 같다.. 그런 감명...

40대 종곤 // 1983년부터 대학 축제에 영산줄이 서게 됐습니다.
4월 고려대를 시작으로, 10월엔 이화여대와 서울대로,
그 이듬해부턴 전국적으로 대학 줄다리기가 이어졌습니다.

#2. 1984년, 고려대학교

(대학생 시위대 소리)
(볏짚으로 줄 만드는 소리)
고대생 // (다급하게) 선생님, 오늘 고려대 주변에 전경이 많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종곤 // 영산줄 꼬랑지만 봐도, 줄 꼬리만 봐도, 최루탄을 쏜다카더니
아이고 맞네, 맞아!

(최루탄 소리)
고대생 // 선생님, 최루탄 계속 쏘면 작업 그만두시고 몸부터 피하세요.

(상록수 연주곡)
김종곤 육성 // “그때는 독재타도, 민족통일, 민주쟁취, 고 셋 어구들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어느 학교 가도 그런 바람이 불고 있을 때입니다. 특히 영산줄에 그런 구호가 필수적으로 따랐지요. 그 엄혹한 시절에 아마 단체의 힘이다, 뭉치는 그런 힘이다 이래 싶어요. 그게 대동이다, 대동의 힘이다.”

김종곤 육성 // “대학에서 흥미를 느끼고 제가 대학에 줄 땡기면 아무리 집에 일이 바빠도 꼭 가고 싶던 이유는 살아있는.. 줄이 살아있는 장면을 저희들이 보는 거잖아요. 생동감 있는 살아있는 줄을 대학에서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전수조교라는 그기 내 어깨를 짓눌렀지요>
#3. 1987년, 종곤의 집

(책 넘기는 소리)
아내 // 양미 아부지, 오늘도 책 읽는다꼬 늦게 잘 거라예?
책이 다 닳겠어예.
종곤 // 나이 오십에 이수자가 되고 전수조교가 되니 어깨가 무겁네.
조성국 선생님이 쓰신 책에도 나오지만
영산줄다리기의 기본정신이 애살, 신명, 몰음인데,
이걸 우짜 갈쳐야 하나 고민이다.
아내 // 내 보기엔 당신 모습이 딱 고대로라예.
몰두해서 열성을 다하는 애살, 뭐든 신나게 하는 신명,
협동해서 같이 할려꼬 하는 몰음, 내 해석이 맞지예?
종곤 // (웃으며) 나랑 비슷한진 몰라도 해석은 맞다.
이 세 가지가 내 농사에도 적용이 되고
열심히 하는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 건 맞다.

(사막길 / 후랑크백)

김종곤 육성 // “1982년도부터 1993년도까지가 아마 저의 줄에 대한 성장기, 성숙도가 높아지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저 머리에 잘 들어오고 주의 깊게 공부하던 때가 1982년 전수 장학생이 되고 선생님이 타계하시는 그 해까지였지요. 그 해까지는 제가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경험 없이 총무로 기용된 것, 창녕양파조합에 상무로 기용된 것, 줄다리기의 제2회 전수 장학생으로 기용된 것, 이것이 전부 조 선생님의 부름에 저가 따른 것입니다. 아마 부모 다음으로 우리 선생님이 은인입니다. 한 마디로 ‘조 선생님이 참 저를 잘 보고 잘 이끌어주셨다. 나도 줄에 몸담은 것이 후회 없다. 참 잘했다.’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보유자 인정-행동으로 움직여야 영산줄이 된다>
#4. 1995년, 영산줄다리기 보존회

(작은 폭죽 터뜨리는 소리)
(박수 소리)
신수식 //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다같이 // 축하드립니다!
종곤 // 아이고, 신수식이 대표해서 내 몰래 준비했나? 모두 고맙다.
신수식 // 자, 그럼 이어서 1995년 6월 1일 오늘, 영산줄다리기 보유자로
인정받은 김종곤 보유자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박수!!
(박수 소리)
종곤 // 신수식, 김종환, 하영준. 그리고 함께 영산줄을 따르는
전수자들이 있어가지고 내 참으로 든든하다.
쑥스럽지만은 내 한 마디 한다면,
행동으로 움직여야 영산줄이 된다!
모든 것이 말이 아이고 몸이라는 걸 명심해라!
신수식 // 알겠습니다!
(박수 소리)

(전화벨 소리)
종곤 // 종한아, 행동으로 움직여야지. 전화부터 받아라!

(수화기 드는 소리)
김종한 // 여보세요! 영산줄다리기 보존회 맞습니다.
아... 유치원이라고예?

김종곤 육성 // “실기교육으로 선생님이 계실 때보다도 훨씬 많이 외지에서 영산줄을 연행하게 됩니다. 그러니 현장이 바로 교육 장소가 됐던 겁니다. 근간에는 중고, 초등학교, 유아원까지가 줄 교육을 하는 단계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나라 줄을 내가 봐야되지 않겠나>
#5. 1999년, 일본 센다이

(센다이 등 일본인들 줄다리기 하는 소리)
신수식 // 선생님, 저 센다이 줄의 길이가 365미터나 된답니다.
1년 365일을 상징하는가 봐예.
종곤 // 와, 굵기는 영산줄보다는 가늘지만은 길이가 굉장하네~
신수식 // 남녀노소,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습니다.
종곤 // 10시가 돼서 땡그는데도 누구 하나 집에 가지도 않고
호각 한 번만 불어도 통제가 되네. 수식아, 이기 가능한 일이가?
신수식 // 주민들 단합이 굉장합니다. 억수로 부럽습니다.

김종곤 육성 // “1999년에 센다이 큰줄이 40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400년제에 영산줄이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자발적인 참여가 거기는 좋아서 그래서 또 땡그는 것도 저녁 늦게 땡급니다. 저녁 10시나 돼서 땡그는데 사람 하나 즈그 집에 가거나 끝날 때까지 헤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고 ‘일본 줄이 여기만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하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서 일본에서 가장 크다는 줄 열 군데를 선정을 했습니다. 그런 줄을 참관하러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식이 여기서 하는 줄보다는 훨씬 더 자발적이더라, 적극적이더라 그런 것을 너무 크게 느꼈죠.”


#6. 2005년, 한국, 영산, 보존회 사무실

종곤 //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이동석 교수 // (반가움) 김종곤 선생님이십니까? 혹시 저... 기억나세요?
1983년에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습니다. 이동석입니다.
종곤 // (반가움) 예,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찍은 사진을 내 화보집에 실어놓고 자주 봐서 압니다.
20년 전 얼굴이 남아있네요.
이동석 교수 // 와, 대단하십니다.
종곤 // 아마 이동석 회장 얘기가 일기에도 적혀 있을 낍니다.
이래 봬도 내 엄청 꼼꼼하지요.
이동석 교수 // 뵙기에도 그러십니다. 하하. (같이 웃는)
종곤 // 그런데 히로시마 수도대학에서 조교수로 있다꼬요?
이동석 교수 // 네, 올해 한일 수교 40주년 행사로 축제를 열게 됐는데,
아시다시피 히로시마는 특별한 곳이잖아요.
이번에 계명대와 숙명여대 학생들 80여 명도 줄다리기하러 같이 갈 것 같습니다.
종곤 // 그카믄 원자탄이 떨어진 그 광장에서 화합의 영산줄을 땡글자는 겁니까?

(쾌지나 칭칭 / 김상국)
김종곤 육성 // “1993년도 타계하시고 나서 제가 명예보유자로 되기 전 2008년까지는 그때 저 활동의 전성기였다꼬 이래 생각이 됩니다. 90년도 말까지도 대학에서는 영산줄이 대동놀이로서 많이 채택이 돼서 선생님 그늘이 아니고 내가 이제 주인으로서, 지도자로서 가게 된 그런 계기가 되고. 2008년도까지 외국에 공연이 히로시마대학, 센다이와 국제교류 이런 외국의 공연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때가 저로서는 줄에 입문한 이후 최전성기가 된다꼬 이래 구분이 됩니다.”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7. 2020년, 한국, 영산줄다리기 보존회

(맨발의 청춘 / 최희준)
80대 종곤 // 나이 여든이 넘은 지금도 전 사진을 찍고 일기를 씁니다.
젊어서부터 이어온 습관 덕분에 책도 냈어요.
1983년부터 대학 줄다리기를 지원했던 이야기는 화보집에 담았고,
2011년엔 <영산줄의 발자취>를,
2016년엔 <중국 조선족의 줄다리기>를 출간했습니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의 이야기는 내 꼭 전하고 싶습니다.

김종곤 육성 // “제3국에서, 그것도 일본한테 쫓겨 갔던 한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심지어는 알몸으로 가서 엄마 등에 업혀 가서 갈대에 불을 지르고, 부모가 죽으면 그 갈대에다가 장사를 지낸 그런 세대들이 칠십이 넘어서 그런 사람들 제가 만나고 대화도 했거든요. 없어서 와가지고 황무지를 개간했던 이런 지역에서 영산줄을 땅길 수 있다는 것, 그곳에서 영산줄의 암줄이니 숫줄이니 하고, 동부니 서부니 하고 하는 이 줄을 연행할 수 있다는 건 이건 또 하나의 내 생애 큰 기쁨이었어요. 이 기쁨도 관까지 내가 넣어갈 것 같습니다.”


신수식 // 선생님, 제 아들놈이 영산줄다리기 보존회에 들어왔습니다.
신용우// 안녕하십니까. 신용우입니다. 선생님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갈 낍니다.
신수식 // 그리고 100% 남성 위주였던 우리 보존회에
여성 회원 두 분을 어렵게 모셨습니다.
여성전수생 // 어렵게 모신 건 아이고예, 와보니 자발적이 됩니다.
김종한 // 이번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갖꼬
9기 전수생들 나이가 마흔 전훕니다.
40대전수생 // 줄 만드는 것도 땡그는 것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80대 종곤 // 내가 2008년도에 명예보유자로 신청한 건
후배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국가 정책상 보유자가 채워질 수 없지만은
이래 단합하면 잘 보존될 끼라 믿습니다.
전체가 같이 움직여야 영산줄은 살아있는 줄이 됩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줄을 땡급시다!
신수식 // 자, 영산줄다리기 보존회 모두를 위해 박수!!
(박수, 환호)

(아빠의 청춘/ 오기택)
김종곤 육성 // “저는 전승자뿐 아니라 영산면민한테, 국민한테까지 ‘항상 고맙다. 빚지고 산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레이션 // 마른 지푸라기에 대동의 숨결을 불어넣고
화합과 풍요를 기원하는 영산 줄다리기.
우리의 영산줄을 지켜온 것은
농사꾼이자 줄꾼으로서의 자부심이었습니다.


< 마무리 코너-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나레이션 // 2015년 영산줄다리기를 비롯한 한국의 6개 줄다리기가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허용호 교수의 설명입니다.

허용호 // 유네스코로 줄다리기가 대표목록으로 등재가 된 것은 일종의 공동등재 형식으로 됐는데요. 각 공동체에서 전승하고 있는 무형유산 또는 줄다리기에 우열이 없다는 거죠. 무형유산 자체에 우열이나 위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신하고도 어긋나는 것이고, 그다음에 공동등재의 정신하고도 어긋나는 거고, 그러니까 모든 줄다리기는, 모든 무형유산은 자기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고 동등하다.
줄다리기는 줄 제작에서부터 마지막 줄을 당기고 줄 처리까지의 과정이 모든 것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어야 되고, 모든 게 다 공유가 돼야 된다는 것, 그다음에 한두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참여해야 가능하다는 것. 그럴 때야만이 무형유산으로서의 줄다리기가 가능한 거지, 그렇지 않으면 그거는 무형유산으로서의 줄다리기라고는 얘기할 수가 없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영산줄다리기, 김 종 곤. 마지막 세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류다무연, 전해리, 이민규, 한만중, 이한솔, 김단, 김혜령,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조중희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마크 기술자와 농사꾼 그리고 영산의 대동놀이인 영산줄다리기를 지키고 전승하는 '줄꾼'으로 살아간 영산줄다리기 보유자 김종곤의 생애가 담긴 오디오 다큐드라마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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